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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티박스>며느리 캐디… 시아버님 회원…
내 나이 스물네 살 때 이야기다.

캐디 일을 한 지 약 2년 정도 되었을까. 코스는 너무나도 편한하게 느껴졌고, 일이 손에 익어 코스를 뛰어다니며 발랄하게 일하곤 하던 때였다.

얼굴이 동글동글 복스럽게 생겼던 나는 참 아저씨 팬(?) 들이 많았다. 옆집 아저씨 같은 분들이 딸 같다 하시며 많이들 귀여워해 주셨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참 감사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통통한 나에게 고객들이 말씀하셨던 통일된 말 중 하나는 “부잣집 맏며느리”였다. 지금 젊은 친구들이 들으면 “그게 기분 좋은 말이야?”라고 하겠지만, 난 맘에 들었다. 복 있다는 말을 그렇게 해주셨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맑은 날의 에피소드이다.

모시고 나간 나이 지긋하신 고객님 왈 “처자 나이는 어떻게 됐는고?” “네 방년 24세이옵니다.” 또 나름 눈치 있는 캐디라고 곱게 받아들이는 말씀에 그 어르신은 너무 맘에 들어하셨던 기억이 난다. “처자 골프는 치는가?” “네 배우기 시작하였나이다.”

한참을 웃으며 라운딩을 하고 난 뒤 끝나갈 즈음에 하시던 말씀이 “내가 아들이 하나 있는데, 올해 스물일곱이거든? 난 볼을 치는 며느리가 보고 싶어. 우리 아들 한번 만나볼 생각 없는가 자네?” “….”

그냥 미소를 지었다. 왜, 나는 애인이 있었으니. 그게 아니더라도 무슨 말을 하겠는가. 고객과 캐디의 관계에서 말이다.

“그럼 담에 내가 우리 아들 라운딩 데리고 올라네, 자네 나올 수 있는가?” “….” 또 할말이 없었다.

우리 골프장은 지정이 안 된다는 말씀을 드릴까 했지만, 또 너무 좋아라 하는 고객님 마음에 돌을 던지는 것 같아서 그냥 웃어드렸다. “그라면 담에 본다고 생각하고 있겠소.” “네 고객님 담에 뵙겠습니다.” “이왕이면 아버님이라고 불러주지.” “네 아버님 담에 뵙겠습니다.” 너무도 원하시는 것 같아 아버님이라는 호칭을 써드린 기억이 있다.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환하게 웃으시며 “아, 우리 며느리” 하고 호탕하게 웃으셨다.

그 당시 나는 “그 많은 고객님 중 이분을 다시 뵐 일이 있겠어? 담에는 기억을 못하시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한두 달쯤 지난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카트를 주차하고 있던 나를 조장언니가 경기과로 불렀다. “네, 언니 왜요?” “OOO 고객님 알어?” “그게 누구에요?” “니네 시아버님이라던데?” “….”

황당한 표정의 나를 보며 언니가 건넨 것은 곱게 포장된 선물상자였다.

“이게 뭔데요?” “오늘 나랑 라운딩 나갔는데 니네 시아버님이 너 이거 갖다 주라던데? 오늘 못 봐서 너무 서운하다고 전해달라고 하셨어.” 그분의 이름조차 기억 못하던 나는 잠시 황당한 마음으로 선물상자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풀어봤다.

그 안에는 인형 볼주머니가 예쁘게 들어 있었다. 마음이 얼마나 따뜻해지던지…. 그리고 두어 달 전 라운딩이 생각났다. 아버님이라고 불러달라던 멋있는 노신사분. 아쉬운 건 그 이후에 그 ‘시아버님’을 뵐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다. 마음속의 며느리라 생각해주신 그 고객님께 말씀드리고 싶다. “아버님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캐디 일을 하다 보면 이런 고객, 저런 고객을 만나게 된다. 힘들기도 아프기도 하지만 이렇게 행복한 에피소드들이 나의 캐디 생활을 사랑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힘든 라운드가 있다면 행복한 라운드도 반드시 있습니다. 대한민국 골프장에 근무하시는 모든 캐디분들. 다들 행복한 라운드를 하는 캐디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쎄듀골프서비스연구소 김지현 기자(前 가평베네스트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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