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바람둥이 제이미(제이크 질렌할)는 제약회사에 영업사원으로 취직, 자신의 매력을 100% 활용해 병원을 상대로 영업에 나선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매기(앤 헤서웨이). 그녀는 진지한 사랑에 빠지길 두려워하며 하룻밤 상대로 남자들을 고른다. 병원에 영업차 갔던 제이미는 그곳에서 환자인 매기를 우연히 만나게 되고, 마음으로 하는 사랑이 싫은 두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의 매력에 이끌리게 되는데….
“평생 이런 기분 처음이에요,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
기호
오랜만에 영화를 본 것 같아. 로맨스는 더 오랜만이었고. 그래서 그런지 아직도 영화 속 몇 장면은 그 여운이 깊게 남아 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수연
두 주인공이 이별한 후에 자주 가던 바에서 재회한 장면이 기억에 남았어. 두 주인공이 현실적인 상황 앞에서 서로의 감성을 숨기며 나눌 수밖에 없었던 대화 속 그 미묘한 분위기!
기호
난 사랑을 두려워하던 매기가 처음으로 고백하는 장면! 삶에 대한 작은 희망을 느끼며, 그 감정은 고스란히 사랑으로 옮겨지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평생 이런 기분 처음이에요,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 사랑해, 사랑해, 정말 사랑해”라고 말하는 매기의 대사에는 그녀의 사랑, 삶에 대한 의지, 희망 등 그 모든 감정이 전달되어 감동을 줬던 것 같아.
“ 이걸로 충분해. 바로 지금 이 순간은 내 것이니까. ”
기호
영화 속 곳곳에 배치된 ‘약’이라는 소재의 정체가 궁금하지 않아? 물론, 실제로 비아그라를 판매한 제약회사 직원의 경험담을 토대로 영화의 이야기가 만들어졌지만, 개인적으로는 ‘사랑’에 관한 메시지를 어느 정도 품고 있는 소재라는 생각이 드는데.
수연
음, 사랑을 질병이라고 한다면 약은 사실상 무용지물인 해결책인 것 같아. 인위적인 화학작용으로 사람의 감정을 조절한다는 게 불가능하다고나 할까. 사랑은 그냥 그 자체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놔둬야 해요. 치료법에 비유하자면 민간요법쯤 되려나.
기호
난 비슷하면서 다른 생각인데, 영화 속 매기가 걸린 ‘파킨슨’이라는 질병, 그리고 곳곳에 등장하는 ‘약’은 어쩌면 사랑과 닮은 것 같아. 사랑을 질병(파킨슨)으로 바라본다면, ‘약’은 그 사랑의 순간순간을 ‘현실’적인, ‘정상’의 상태로 잠시 되돌려 주는 매개가 아닐까.
“난 속물이야. 100% !”
수연
영화는 진지한 사랑을 거부하던 두 주인공이 진정한 사랑의 감정을 찾아가는 내용을 그리고 있어. 그 과정에서 주로 여주인공 매기는 달아나고, 남자주인공 제이미는 다가가려는 노력이 많이 나타나는 것 같아. 그렇다면 처음에 제이미는 왜 메기한테 접근한 거지?
기호
영화 속 제이미는 타고난 바람둥이고, 때문에 연애나 사랑에도 가벼운 캐릭터야. 아마 처음의 관심은 매기에 대한 ‘섹스어필’적인 부분이 크게 작용했겠지.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제이미의 작업멘트 혹은 두 주인공의 잠자리보다는 진한 감동이 묻어나오는 ‘헐리우드’식의 고백 장면이 먼저이지 않았을까?
수연
아. 나는 처음에 제이미가 메기를 이용해서 약 팔려고 접근한 줄 알았는데, 그것보단 메기에게 여성으로서의 성적 매력을 느껴서 다가간 측면이 더 컸구나. 어쨌든, 제이미가 메기를 더 먼저 좋아했고, 더 많이 좋아하니까 사랑과 이별의 과정에서도 메기를 더 적극적으로 붙잡았겠지? 더 사랑하는 쪽이 약자라는 말처럼.
기호
음, 그래도 난 누가 먼저 사랑했다고 해서 사랑을 늦게 시작한 쪽이 덜 사랑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 같아. 극 중에서 매기의 행동은 제이미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부담감을 주거나 그의 인생에 걸림돌이 되기 싫어서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속인 채 이별을 선택한 거고.
수연
NO! 물론 그런 부분도 작용했겠지만, 제이미의 입장보다는 매기 스스로를 위해서 그렇게 행동했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해. 파킨슨이라는 불치병에 걸렸다는 자신의 상황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메기의 입장에서는 언젠가 그것이 자신에 대한 제이미의 사랑을 흐리게 하고 또 떠나게 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더 깊게 사랑했다가 나중에 돌아올 비참함과 공허함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미리 선택한 일종의 자기 방어겠지.
그럼 진짜 사랑은 뭔데?
수연
아, 또 궁금한 게 있었는데 제이미는 왜 매기를 사랑하게 됐을까?
기호
글쎄? 예쁘고 몸매도 좋으니까? (웃음)
수연
이 사람이! 그건 됐고. 혹시 메기가 제이미에게 ‘모성애 자극, 그런 게 작업할 때 도움이 돼?’라고 말했던 것과, 제이미가 메기에게 ‘자기 연민, 그런 게 작업할 때 도움이 돼?’라고 말했던 거 기억나? 실제로 모성애 자극이나 자기 연민이 두 사람의 관계를 진정한 사랑으로 이끄는 데 도움되었다고 생각이 드는데?
기호
오, 그 부분은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인데. 왜 그렇게 생각하지?
수연
모성애 자극이나 자기 연민은 그 사람의 약한 면을 보여주는 거잖아. 진짜 그 사람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건, 겉으로 드러나는 매력을 넘어서 내면적인 본질까지도 받아들여 줘야 가능하니까. 사람들이 사랑을 통해 궁극적으로 얻고 싶어 하는 것은 바로 상대방에게 본연적인 내가 인정받고 보듬어지면서 느끼는 안정감과 자존감 같은 것이 아닐까?
기호
절대 동감! 맞아, 사람 사이의 관계는 처음에 외적 부분에 의해 시작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것이 더 발전하고 오래 유지되려면 실제의 나를 보여주는 과정이 꼭 필요한 것 같아. 그러고 보니 처음에는 섹스 그 자체에만 집중했던 제이미와 메기가 서로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누거나 같이 밥을 먹는 시간을 더 행복하게 여기게 되었잖아. 그 과정들이 두 주인공의 사랑이 점점 깊어가는 걸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장면이었네.
영화 <러브&드럭스>는 ○○이다.
기호
영화 <러브&드럭스>는 ‘핸드크림’이다. 손이 당기고 건조해졌다고 느낄 때, 우린 핸드크림을 찾는다. 언젠가부터 우리의 사랑이 건조해졌다고 느낄 때 이 영화를 찾아보면 좋을 듯하다.
수연
영화 <러브&드럭스>는 ‘보물찾기’이다. 영화 곳곳에 사랑에 관한 생각할 거리들이 숨어 있기 때문! 제이미와 메기의 사랑을 통해 나만의 사랑관을 정립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