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레논, 폴 메카트니, 링고 스타, 조지 해리슨 이들 네 청춘은 비틀즈라는 이름으로 영국을 사로잡더니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 첫 발을 디디고 이내 세상의 귀를 바꾸기 시작했다. 1964년 2월 7일 미국 케네디 공항을 처음 밟은 이후부터 2월 21일 영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불과 2주 간의 일정이었지만 모든 것은 달라졌다.
‘비틀즈’로 하여금 영국발 침공이라는 말이 생겨난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1964년 2월 14일 비틀즈가 ‘에드설리반 쇼’에 출연하면서였다. 미국 전체 인구의 40%인 7300만명이 이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시청률은 무려 60%였으니 비틀즈의 미국 상륙은 단지 ‘하나의 현상’을 넘어섰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이제 비틀즈와 함께 롤링스톤즈, 더 후, 더 킹크스, 데이브 클럭 파이브 등을 중심으로 한 영국 음악들은 미국 시장에서 상업적 성공을 거둔다. 그 일련의 과정은 마치 ‘사회적 운동’과도 같았기에 붙여진 이름이 바로 ‘브리티시 인베이전(영국발 침공)’이었으며, 이 말에는 비틀즈로 말미암은 미국인들의 충격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이것을 계기로 비틀즈는 ‘20세기 음악의 신화’가 되기에 이른다.
비틀즈와 함께 시작된 ‘브리티시 인베이전’은 미국의 록 역사에서는 결코 잊히지 않는 커다란 흔적이었다. 그들은 이것을 ‘제2의 로큰롤 혁명’이라고 말했다. ‘팝의 대폭발’이라는 말로 부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태생이 미국이었던 로큰롤 음악은 60년대 이전 전세계를 사로잡았다. 영화 ‘존 레논 비긴즈:노웨어 보이(Nowhere Boy)’에서 소년 존 레논은 엘비스 프레슬리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로큰롤 음악을 만나며 '존 레논'으로 성장해간다.
비틀즈이고 ‘존 레논’이었기에 더 특별했을 광란의 로큰롤 음악들은 그렇게 영국을 침범해 들어왔다.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성장해 전세계로 뻗어나간 미국의 로큰롤 영향을 받고 성장한 ‘영국의’ 가수가 다시 미국으로 건너와 이제는 시들해진 60년대 이전의 로큰롤을 60년대 이후의 감성을 되살려놓은 것이다.
비틀즈가 오기 이전 미국 시장에서 로큰롤 음악은 이미 쇠퇴기를 걷기 시작했다. 미국의 젊은이들은 이내 새로운 것을 원했다. 로큰롤의 뿌리가 컨트리팝에도 맞닿아있는 것을 본다면 로큰롤이 얼마나 미국적인 음악인지를 알 수 있다. 그 로큰롤에 기반을 둔 영국의 밴드 비틀즈가 미국 젊은이들의 감성을 건드렸다는 점은 미국 록 역사의 큰 흔적이 될 만하다. 그 때의 그것은 새롭고 신선한 로큰롤이었다. 50년대 미국의 로큰롤을 영국의 감성으로 해석한 이들의 음악은 미국 음악에 새로운 감성을 자극하는 도화선이 됐다.
이후에도 이어지는 브릿팝의 미국 침공은 이때만큼 혁신적이거나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그것은 전세계 어디에서라도 이어지고 있다. 존 레논에게 로큰롤이 ‘어디에도 없는’ 그의 소년시절을 ‘존 레논’으로 만들었듯이 비틀즈가 일궈놓은 ‘브리티시 인베이전’은 60년대 이후 미국 음악에 뿌리깊이 박혀있으며 해체 40년이 흘렀지만 전세계 음악시장은 비틀즈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은 1964년 2월 1일 리버풀 출신의 이 밴드 비틀즈가 ‘그대의 손을 잡고 싶소(I Want Hold Your Hands)’라는 싱글을 발매하며 미국에서 2주 만에 무려 2백 6십만 장을 판매하던 때부터 이미 모든 것은 시작됐다. ’브리티시 인베이전: 영국발 침공'이었다.
<고승희 기자 @seunghe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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