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말 투아웃도 좋고, 우승퍼트만을 남겨놓아도 좋고, 10초 남은 프로농구 4쿼터도 좋다. ‘정규방송관계로…’라는 계엄선포문 뺨치는 위엄있는 자막 한줄이면 어떤 중계도 당당히 끊는 것이 우리나라 스포츠 중계의 현주소. 이때문에 국내 스포츠팬들이야 TV중계 잘리는 걸 숙명처럼 짊어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야구를 무승부없이 이틀동안 치르는 것도 당연하게 여기는 미국에서 스포츠중계가 중단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거금을 주고 사온 빅매치 중계권인데 ‘정규방송 어쩌구’하면서 끊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미국의 PGA투어 골프대회에서는 마지막조의 라운드가 끝나기 전에 중계가 종료되는 일이 종종 벌어져 팬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21일 막을 내린 노던 트러스트 오픈에서도 마지막 조가 18번홀 퍼트만을 남겨놓은 상황에서도 작별인사를 하거나, 무려 5홀을 남겨놓았을 때 끊기도 했다.
이런 한국형 사태(?)의 원인은 크게 2가지다.
첫째는 선수들의 늑장플레이. 노던 트러스트 오픈에서는 파4 10번홀이 화근이었다. 아마추어 장타자도 욕심내볼만한 315야드의 짧은 파4홀이다 보니 선수들은 앞 조가 홀아웃 할때까지 티샷을 하지 못하고 기다리면서 병목현상이 발생했다. 이때문에 18홀을 도는데 5시간15분이 걸리는 조들이 나왔고, 방송사들은 슬며시 중계를 마감했다.
하지만 방송사들도 비난을 피하긴 어렵다.
CBS의 경우 미국의 인기스포츠인 남자대학농구룰 중계하느라 예정보다 15분 늦게 중계를 시작한데다 중단했고, 명색이 골프전문채널인 골프채널도 중계를 마무리짓지않아 지탄을 받았다. 또한 경기를 보고싶은 시청자의 뜻과 관계없이 쉴새없이 내보내는 자막공해도 불만이 높다. 수시로 페덱스컵 포인트 순위가 자막으로 나가면서 정작 경기장면이 못나가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갤러리로 경기장을 찾는 수 밖에 없는 것일까.
김성진 기자withyj2@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