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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백’ 日서 책-영화로 신드롬을 일으킨 이유
일견 평범한 13세 소년에 의한 잔혹한 살인. 피해자에 의한 기묘하고 살벌한 복수. 교사가 뭐라하든 떠들고 장난치는 학생들. 집단 따돌림과 괴롭힘이 일상화된 교실. 그 풍경을 덮는 오싹하도록 냉정하거나 어이없이 순진한 목소리들. 뮤직비디오같은 스타일리쉬한 영상. 몽환적이고 음울하며 때로 달콤한 선율의 모던록. 이 모든 것들이 교향곡같은 화음을 이룬 영화.

지난해 일본에서 신드롬을 일으켰던 영화 ‘고백’이다. 새학년 진급을 앞둔 중1생들의 교실, 3월의 종업식에서 여교사가 “우리반에 내 딸아이를 죽인 범인이 있습니다”는 충격적인 ‘고백’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지난해 여름 일본에서 개봉해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6월 개봉해 할리우드 영화가 강세를 보이던 일본 극장가에서 자국영화로는 무려 8개월만에 주말 박스오피스 1위로 데뷔해 4주 연속 정상을 지켰다. 제작비 대비 10배가 넘는 39억엔 이상의 흥행수입을 기록했고 일본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 각본상 등 4관왕을 차지했다. 이미 지난 2009년 출판가에 등장해 300만부 이상을 팔아치운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특히 여고생들과 중년의 여성팬들 사이에서도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주목을 끈 것은 3D영화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TV 시리즈의 극장판, 말랑말랑한 로맨스, 애니메이션이 주류를 이룬 일본 영화계에서 어둡고 무거우며 비극적인 결말을 갖는 작품으로는 드물게 흥행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국내에서도 일본영화라고 하면 일부 공포영화나 극단적인 표현의 저예산 영화를 제외하곤 아련하고 잔잔한 사랑이야기나 선인이 주인공인 드라마, 엇박자 같은 유머의 코미디를 떠올리기 쉬우나 이 영화는 파워풀하고 스타일리쉬한 비극이자 스릴러로서 일본영화의 또 다른 저력을 보여준다.

‘유제품 활성화 모범학교’라는 한 중학교의 교실. 우유를 먹으며 선생님이 있거나 말거나 왁자지껄 웃고 떠드는 학생들 사이로 여교사 유코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미혼모인 자신은 에이즈에 감염된 연인이자 동료교사와의 결혼을 거부하고 딸을 키워왔으나 사고로 잃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찰은 사고로 발표했지만 사실은 살해된 것이며 그 범인이 자신이 맡아왔던 반 학생이라고 밝힌다. 

유코는 “살인범이라고 해도 청소년법에 의해 반성문 한 장 쓰고 끝”이라며 “경찰에 고발하지 않겠으나 누구인지 알고 있다”며 공범인 학생 2명의 정보를 말해준다. 유코는 “그 둘에게 나 나름대로의 복수를 하기 위해 1년간 우유에 에이즈 감염자의 피를 넣어왔다”며 “잠복에서 발병까지의 몇 년 동안 범인이 뉘우칠 수 있고 생명의 소중함을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한 후 교단을 떠난다. 유코가 ‘A’라고 지칭한 한 명의 소년은 뛰어난 과학재능을 가지고 있는 비상하고 우수한 학생이고, 공범 ‘B’는 착하고 유순하며 평범했던 학생이다. 그 둘은 왜 담임교사의 어린 딸을 죽이게 됐을까. 

학생들과 헤어지는 날 무서운 비밀을 털어놓은 유코의 목적은 무엇일까. 살인범과 함께 한 교실에서 또 다른 1년을 생활해야 하는 학생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영화는 유코를 시작으로 살인범인 두 소년, 그 중 한 소년과 친하게 된 소녀, 소년의 엄마 등 일종의 단락별로 나뉘어진 주요 등장인물들의 ‘고백’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내레이션 형식의 고백이 이어질수록 충격과 긴장은 배가되고 인간의 악마적 본성이 드러난다.

영화는 등장인물들의 소름끼치도록 차분한 어조처럼 살벌하고 차갑다. 버림받은 엄마에게 인정을 받고자 하는 한 소년이나 따돌림ㆍ열등감ㆍ피해의식에 시달리는 또 다른 학생 등 미성숙한 존재들이 가질 수 있는 왜곡된 자의식과 이상심리가 영화 속에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일본 뿐 아니라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익숙해진 학교의 풍경, 왕따나 집단괴롭힘도 일상적으로 등장한다. 어른들도 어쩔 수 없다. 무책임하고 무력하며 이기적이다. 이 영화는 저채도와 모노톤에 가까운 화면, 슬로모션으로 아이들의 밝은 웃음과 역동적인 몸짓을 보여줘 경쾌한 느낌까지 자아내는 영상은 어둡고 무거운 내용과 극단적인 대조를 이룬다. 

영국의 록밴드 라디오헤드의 ‘라스트 플라워스’를 비롯해 등장하는 감상적인 모던록풍 음악도 귀를 자극한다. ‘불량공주 모모코’ ‘혐오스런 마츠카의 일생’을 연출했던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으며 일본의 인기 여배우 마츠 다카코가 여교사역을 맡았고 학생으로 등장하는 배우들은 1000대 1이 넘는 오디션으로 선발했다. 31일 개봉.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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