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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지도층 잇단 비극적 삶 마감 그 뒤엔…
사람 만나는 게 두려운 세상이다. 잘못된 만남으로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기 일쑤다. 이른바 휴먼 리스크 시대에 살고 있다.

농림부 장관까지 역임했던 잘나가던 관료 임상규 전 순천대 총장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순간 ‘악마의 덫’을 얘기했다. 사람 좋아하고 호방한 그는 마당발임을 자랑으로 여겼다. 수사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비리 연루 혐의로 검찰 수사선상에 올랐던 임 전 총장이 언급한 악마의 덫이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믿었던 한 사람의 배신은 30여년 공직생활 동안 신망을 쌓아온 삶을 비극으로 끝나게 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학맥이나 인맥을 통해 청탁이 오는 경우 합리적인 사람조차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며 “연고를 통한 청탁은 궁극적으로 사람 간 만남의 단절, 소통의 단절을 초래하는 사회악”이라고 진단한다.

장관까지 지냈던 한 관료는 오히려 지연을 멀리해 고향 지인들로부터 비난받기도 했다. 경상도 정권에서 전라도 출신이 생존하려니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정권이 바뀌어도 검찰 수사에서 자유롭다. 하지만 관료 후배들은 책임질 일이라면 전혀 하지 않은 선배라고 말한다.

휴먼 리스크는 학연·지연 등 연고자 간 만남에서 비롯되고 시간이 갈수록 확대된다. 인적 네트워크란 말로 포장되기도 한다. 박연호 부산저축은행그룹 대주주는 호남의 명문 광주일고 동문들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수조원대의 불법 대출과 편법 자산운용, 분식회계를 일삼은 혐의를 받고 있는 부산저축은행그룹 대주주와 임원들은 브로커를 내세워 학창 시절 모범생에서 명망 있는 관료로 성장한 선후배들을 수뢰 혐의자로 끌어내렸다. 검찰의 서슬 퍼런 수사의 칼끝이 정치권을 향하고 있다고 하니, 지역 연고의 일부 정치인도 비리 혐의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란 분석이 적잖다.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가 이렇다 보니 만남을 소중히 해야 할 사람들마저 만남을 꺼리고 있다. 음식점에서 우연찮게 만나면 반갑기보다 오해하지 않을까 걱정부터 앞선다. 그건 사회 저변의 다양한 부작용으로 돌아온다.

저축은행 부실화의 책임을 추궁받고 있는 금융감독원이 당장 그렇다. 금융회사에 대한 감독·검사 책임을 충실히 수행하려면 정보수집 차원에서 업계 인사들과의 만남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금감원은 전·현직 임직원이 부실 저축은행에서 뇌물을 수수한 의혹을 받게 되는 등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지난달 직무관련자와의 사적 접촉을 금지하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스스로 손발을 묶어버린 것이다. 금감원의 한 직원은 “비록 ‘부적절한’이라는 단서를 달아 접촉을 피하라는 지시지만 의심받을 일을 굳이 할 필요가 있겠느냐. 아예 업계와의 만남 자체를 중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검사업무가 오해받지 않을 일 중심으로 진행된다. 일선 검사요원은 지적사항, 적발건수 올리기에만 급급하다. 별게 없으면 검사기간을 연장하기 일쑤다. 모든 검사엔 속도 조절이 필수적이지만 오해받지 않으려는 팀장이나 그 윗선은 그걸 포기한 지 오래다.

현택수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저축은행 사태는 우리 사회의 관계망이 학연·지연으로 엮여 있고, 합리성보다는 인정이나 감정을 바탕으로 불법을 행하거나 비리를 감추는 데 이용되고 있는 것을 재삼 확인시켜준다”면서 “다만, 연고자 간 만남이 인맥과 친분을 만들어가는 순기능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현 교수는 또 “비리를 덮고 청탁을 하는 모임이 아니라 출신 학교나 지역사회에 기부를 하자는 식의 공익적 모임으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윤재섭 기자/i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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