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서 학자금 전액 지원
대기업 부장 A씨는 ‘반대’
복지 사각지대 놓인
중기 임원 B씨는 ‘찬성’
부실지방大의 지역차별論
非대졸자의 稅인상 저항 등
해답 찾으려 애쓸수록
구조적 해답없는 판도라상자
한나라당과 정부는 21일 당정협의를 갖고 백가쟁명식으로 전개되고 있는 ‘반값 등록금’ 해법을 구체적으로 논의한다. 등록금 인하는 돌이킬 수 없는 사회적 이슈로 부상했지만 ‘딱 부러지는 해답’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6월 국회는 불과 10여일 남았지만, 답을 내놔야 할 정치권은 여전히 ‘머리 아픈’ 표정이다. 그만큼 반값 등록금은 까면 깔수록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와 직결되는 ‘판도라의 상자’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반값 등록금 속에는 우리 사회의 온갖 골칫덩이가 다 담겨 있다”고 하소연했다.
▶반값 등록금은 대ㆍ중소기업 차별의 상징=얼마 전 소주 한잔을 기울인 50대 친구인 A 씨와 B 씨는 ‘반값 등록금’ 문제를 놓고 찬반으로 갈려 설전을 벌였다. 두 사람의 논쟁은 시사토론장의 여ㆍ야 국회의원들 보다 더 팽팽했다.
모두 고3 자녀를 두고 있는 이들은 왜 갈라졌을까. 답은 A 씨가 다니고 있는 대기업은 대학 학자금 전액을 지원하고 있지만, 중소기업 임원인 B 씨는 복지혜택의 사각지대에놓여 있기 때문이다.
삼성ㆍLGㆍ현대차ㆍKT 같은 대기업에서 온갖 압박 속에서도 책상을 지키고 있는‘ 말년 부장’사례는 심심치 않게 회자된다. 대학생 자녀들의 학자금이 이들로 하여금 자존심까지 접어두게 한 것이다. 이들 대기업은 보통 자녀 2명까지 대학 8학기 등록금 전체를 급여와 별개로 지원한다. 학자금 지원액은 연봉의 10~40%에 달한다. 그러나 이런 혜택은 우리 사회의 10% 미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근로자 90%가 일하고 있는 중소기업에서는‘ 꿈도 못꿀’ 비싼 복지정책이기 때문이다.
반값 등록금 공청회에서“ 공정한 교육 기회 배분을 목적으로 하는 반값 등록금 정책이 결과적으로 대기업의 배만 불려줄 수 있다”는 색다른 지적이 나온 것도 이런 까닭이다. 일부 대기업에서는 벌써 대학 등록금 지원 축소에 따른 이익이 수백억원에 달할 것이라며 미소짓고 있다.
▶반값 등록금은 비대졸자 역차별=매년 신문에는 미용ㆍ애견ㆍ용접 등 취업률 100%를 앞세운 ‘이색 학과’가 소개되곤 한다. 특성화고나 기능학원에서 1~2년이면 배울 수도 있지만, 수백~수천만원의 돈과 4년의 시간까지 투자하면 ‘대학 졸업장’까지 덤으로 주겠다는 것이다.
반값 등록금 논란에서 빠지지 않는 이야깃거리는 80%가 넘는 대학진학률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비율의 대학생이 존재하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대졸자들이 전체 신규 노동인력의 80%가 넘다보니 고졸자들의 일자리는 더더욱 줄어들고 있다. 9급 공무원 시험 응시자 90%가 대졸, 또는 대학 재학생인 풍경은 더 이상 낯설지가 않다.
이 와중에 힘들게 먼저 사회에 진출한 20%의 고졸자들은 다시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80%의 대학생’을 도와주게 된다. 반값 등록금 논란 속에 숨겨진 대졸자와 비대졸자의 또 다른 차별이다.
▶기부 가로막는 사회가 만든 비싼 등록금=우리나라보다 대학 등록금이 비싼 곳은 전 세계에서 미국이 유일 하지만, 수많은 기부자가 내놓은 장학금 때문에 학생들의 부담은 상대적으로 적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미국은 전체 학생의 87%가 장학금을 받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28%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기부 문화는 아직 미흡하다는 게 중론이다. 기부를 가로막는 데는 우선 미흡한 제도가 일조하고 있다. 학교에 대한 기부를 일반 상속이나 증여와 같이 취급한다. 고액의 세금을 매기다 보니 그 효과가 세금만큼 줄어든다. 또 대학이나 장학재단의 투명하지 않은 운영도 한 몫한다‘. 김밥 할머니’나‘ 폐지 할머니’가 전 재산을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써달라며 대학에 쾌척하는 뉴스는 종종 나오지만, 기부금이 누구의 장학금으로 쓰였는지는 불명확하다. 부산대의 350억원 기부 무효소송, 참여연대와 연세대의 기부금 사용 내용 소송전 속에는‘ 일단 받고 나면 끝’이라는 우리 기부문화의 잘못된 모습이 자리잡고 있다.
▶반값 등록금, ‘수도권-지방’ 차별논쟁 불붙일까=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한 필수조건 중 하나가 대학구조조정이다. 국민의 혈세가 부실대학까지 지원하는데 사용되는 꼴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일단 대학 구조조정이 반값 등록금과 병행돼야 한다는 논리는 이미 우리 사회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문제는 입학 정원도 못 채우고, 학교 시설도 열악한 속칭‘ 부실 대학’ 대부분이 지방에 있다는 점이다. 교과부가 지난해 학자금 대출제한 대상으로 선정한 부실 대학 23곳 모두 영남, 호남 제주도 등 지방 소재 대학이다. 또 정부는 반값 등록금이 본격화되는 내년에 이들 대출 제한 부실 대학을 모두 50곳으로 늘려, 정부 재정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이 같은 반값
등록금발 지방 대학 구조조정은 결국 대학의 서울, 수도권 쏠림을 더욱 가속화하고, 이는 다시 지방교육 여건 붕괴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시발점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최정호 기자/choijh@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