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름만 ’빼고, 박근혜 전 대표 중심으로 다 바뀌었다."
원내대표 경선에 이어 4일 치러진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친이계 일색이던 당 대표(박희태ㆍ정몽준ㆍ안상수)에 비주류인 홍준표 후보가 당선된 데는 박심(朴心)과 직결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친박계 유승민 2위, 친이계 원희룡 4위’ 성적표를 보더라도 박 전 대표의 영향력은 유감없이 발휘됐다.
여권이 위기를 겪을 때마다 박 전 대표의 파워는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역할론’으로 증명됐다. 차기 유력 대권주자가 당을 구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친박계는 그러나 국면전환용이라며 선을 그으면서, 세종시 수정안 반대 등 굵직굵직한 현안에 대해 박 전 대표의 입장을 밝히며 건재를 과시했다.
7ㆍ4 전당대회 이후 사정은 달라졌다.
친이계가 당 대표와 원내대표 ‘투톱’ 자리를 모두 내주면서 쇠락의 길로 한걸음 더 깊숙이 들어간데다 기존 수직적 당청 관계의 재정립을 요구하는 홍준표호(號)의 출범으로 청와대는 더욱 작아지게 됐다.
당 중심의, 신주류 중심의 국정운영은 미래권력 1순위인 박 전 대표로의 쏠림현상에 가속도를 붙게 할 전망이다. 남경필 최고위원은 “힘의 균형이 이제 친이에서 친박으로, 미래권력 박 전대표로 넘어갔다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평가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홍 대표 당선은 비(非) 친이계로 내년 총선과 대선을 치러야 한다는 공감대가 당내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며 “박 전 대표의 파워가 확인된 이상 친이계가 빠른 속도로 해체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박 전 대표에게 당의 무게중심이 옮겨지면서 한나라당에서 ‘포스트 이명박 체제’ 구축이 불가피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청와대는 레임덕의 가속화를 우려하는 분위기다. 홍준표 대표는 어느 정도 예상한 시나리오였지만, 대통령의 임기를 1년 반 이상 남겨둔 시점에 친이계가 힘 한번 쓰지 못하고 사실상 몰락하면서 ’국정 주도권 상실→레임덕 가속화’우려가 생각보다 빨리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특히 각종 정책을 놓고 당ㆍ청 간 갈등의 골이 깊은 상황에서, 당 지도부 역시 친박ㆍ소장파 위주로 새롭게 재편됨으로써 ‘안정적 국정 마무리’라는 집권 4년차 목표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청와대 내에서는 “청와대 참모들이 자칫 ‘직장인’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벌써부터 들린다.
한 관계자는 “여당 신주류의 ‘MB노믹스’ 흔들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친서민을 강조한 새 지도부가 주도권을 행사하면 정책 혼선과 레임덕이 불보듯 뻔하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친박 중심의 새 지도부의 실체를 인정하고 적극적인 소통 강화에 나선다면 그동안 일방통행이라는 비판을 받은 당ㆍ청 관계 개선의 새로운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는 기류도 없지 않다.
전대 이후 정치권은 대권 속으로 급속하게 빨려들어갈 전망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권주자 1위를 기록하는 박 전 대표가 본격 행보에 나설 경우, 여권의 2위권 주자들은 물론 야권 주자들도 두고 볼 수 없는 노릇이다.
박 전 대표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적극적인 활동에 나설 의지를 밝힌 만큼 정치 활동이 과거보다 활발해질 것이라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대권행보 스타트 시기만 남았다는 분석이 대체적인 가운데 새 지도부에게 활동공간을 마련해 주기 위해 시점을 조금 늦출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 전 대표에게 우호적으로 재편된 여당의 권력구조에 야권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여권 안에서 박 전 대표의 견제세력이 사실상 자취를 감췄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조동석 기자/dsch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