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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나만의 별하나…천문동아리의 세계
아마추어 천문학자들의 세계
남들이 보면 우스꽝스럽겠지만…
좋아하는 것 더 가까이 보고 싶은 마음
성능 뛰어난 천체망원경에 집착하고
다 해진 노트엔 관측기록 빼곡


개화기 조선의 어느 청명한 밤, 왕실은 서양의 외교관들을 달맞이 행사에 초대했다. 따스한 봄 바람이 달빛에 스치고, 휘영청 뜬 보름달이 술잔에 그득하게 채워졌다. 아낙네들은 등에 업힌 아이들에게 “달에 사는 토끼가 절구를 찧고 있단다”라며 옛날 얘기를 한 소절 풀어냈다. 그런데 뒤늦게서야 도착한 벽안의 외교관들이 저마다 손에 든 괴상한 물체를 달이 있는 방향으로 들어 눈에 가져다 댔다. 천체망원경이었다. 그 괴상한 물체를 한참이나 들여다보던 한 외교관이 내뱉었다. “토끼 얘기 따위는 미신이니까 집어치우라고!”

자연을 대하는 동양과 서양의 태도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이 일화는 자연을 ‘관찰의 객체’로만 대하는 서양적 가치관을 우스꽝스럽게 드러낸다. 하지만 어쩌랴.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저 우스꽝스런 서양인들의 태도가 남의 일만은 아니니.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불빛을 간신히 이기고 도심에 사는 우리들에게 다가온 별빛이 알고보니 인공위성의 반사광이었더라는 씁쓸한 현실이 지배하는 이곳에서 선조들의 감성은 사치다. 차라리 ‘천체망원경을 통해서라도 별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이 시대의 감성을 솔직하게 대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밤은 깊어만 갔고, 달빛마저 사위어들었다. 하늘엔 오래 전 머나먼 우주에서 별들이 보내온 메시지가 반짝이고 있었다. 오늘은 어떤 별의 속삭임을 들어볼까. 사람들은 반가운 마음에 망원경을 편다. [사진제공=한국천문연구원]

대학 때 천문동아리에 가입한 것을 시작으로 이 ‘우스꽝스러운 취미’를 시작한 이규용(35) 씨는 자신의 감성을 이렇게 변호했다. “너무 좋아서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서 보고 싶었어요. 물론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환상이 깨지고 말겠지만, 다행히도 제가 가진 망원경의 성능이 그다지 좋지 않아서 환상을 깨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유지해 주더라고요.” 그는 마치 사랑하는 연인의 얼굴이라도 들여다보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 헤진 노트에 빼곡히 적힌 관측 기록이 그 사랑의 깊이를 말해주고 있었다.

좋아하는 것을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욕망이 그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역사는 400여년 전 달과 목성을 관찰한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최초의 천체 관측자로 기억하지만, 아마추어 천문학자 티모시 페리스는 근대 천문학의 기초를 쌓은 공신으로 ‘좋아하는 사람(아마추어(amateur). ‘사랑한다’란 뜻의 라틴어 아마토르(amator)에서 유래)’을 꼽는다.

티모시 페리스의 저서 <우주를 느끼는 시간>에 따르면, 근대의 위대한 천문학자 대부분이 전문 천문학자가 아닌 아마추어 천문학자였다. 중세를 지배한 천동설을 무너뜨린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가끔 천문학자로 일하던 아마추어 천문학자였다. 행성이 타원 궤도를 돈다는 사실을 발견한 요하네스 케플러는 주로 점성술사와 초등학교 교사로 먹고 살았으며, 핼리 혜성의 주기성을 발견한 에드먼드 핼리 역시 아마추어 천문인이었다. 직접 망원경을 제작해 하늘을 관측하고 1781년에 천왕성을 발견했던 윌리엄 허셜은 작곡가이자 오르간 연주자였다.

‘가까이 더 가까이’ 보고자 했던 사람들의 욕망은 천체망원경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천체동호인들 사이에서 이른바 ‘구경병(Aperture Fever)’이라 불리는 더 좋은 장비에 대한 욕망 말이다. 구경이란 망원경에 사용되는 렌즈나 거울의 직경을 뜻하는 것으로, 구경이 큰 망원경일수록 더 많은 빛을 모을 수 있어 어둡고 작은 천체까지 관측할 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세워진 구경 5m의 헤일 망원경, 8.2m 반사 망원경을 무려 4개나 연동시켜 놓은 칠레의 VLT(이름조차 아주 크다는 뜻의 ‘Very Large Telescope’), 지구 상에 존재하는 최대 구경(10m)의 천체망원경이라 불리는 하와이 마우나케아 산의 켁(Keck) 망원경 등은 이러한 욕망의 산물이다.

하지만 이런 초대형 망원경들도 지상에 세워졌다는 근본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별빛이 지구를 둘러싼 대기를 통과할 때 굴절ㆍ산란하게 돼 아무리 좋은 망원경이라도 지상에서는 정밀한 상을 얻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아예 별 가까이 한걸음 다가가 대기권 밖에 망원경을 올려놓기로 했다. 1990년 발사된 허블 우주 망원경이다. 현재까지 70만장이 넘는 우주사진을 찍는 등 많은 관측 성과를 낸 허블 우주 망원경은 예산 문제 등으로 인해 머지 않아 수명이 다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신 허블 우주 망원경의 뒤를 이어 2009년 유럽우주국(ESA)의 ‘허셜’이 우주로 쏘아 올려졌으며, 우리나라도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의 ‘스피카’와 NASA의 ‘제임스웹’ 등이 개발되고 있다.

취미로 별을 관측하는 아마추어에게 이런 대형 망원경들은 언감생심. 망원경만 있으면 TV나 신문 기사를 통해 접할 수 있는 기막힌 우주의 장관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접는 것이 좋다. 개인이 소장하는 망원경으로는 그저 조그맣고 희미한 빛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별 관측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무턱대고 천체망원경부터 구입하지는 말라’고 조언한다.

그렇다고 해서 작은 망원경을 차에 싣고 공기 좋은 시골을 찾아 별맞이 여행을 떠나는 것이 무의미한 일일까. 15인치 구경의 망원경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정용수(38) 씨는 “소박한 장비라 관측에는 한계가 있지만 나만의 별 하나를 평생 동안 관찰할 수 있어 좋아요. 밤하늘이 저렇게 넓은데 나의 별 하나쯤 가져도 되지 않겠어요”라고 말했다. 어떤 시인은 “나만의 별 하나를 키우고 싶다/밤마다 홀로 기대고 울 수 있는 별/내 가슴속 가장 깊은 벼랑에 매달아 두고 싶다”고 노래하지 않았던가.

김성훈 기자/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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