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중지란’ 일본 자충수 “한국 긴박한 상황 이해돼”
-군대 보유하려는 아베 정권의 ‘헐리우드 액션’ 분석도
일본 P-1 초계기가 촬영한 우리 해군 구축함 광개토대왕함 [사진제공=연합뉴스] |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일본 정부가 한국 해군함정(구축함 광개토대왕함)의 레이더 조준 여부를 문제 삼으며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한 가운데 우리 정부가 저고도 위협비행한 일본이 사과할 일이라고 반박해 한일간 레이더 논란 2라운드로 접어들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일본 측의 갑작스런 항의 배경에 내부 사정이 있으며, 적극적 대응이 오히려 일본 아베 정권을 도와줄 수 있다고 판단해 한때 대응을 자제했다. 하지만 일본이 사실과 다른 주장에 근거해 계속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하고 있고, 이를 뒤집을 명확한 근거마저 있는데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판단해 결국 본격적 대응에 나섰다.
우리 정부는 지난 1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자국 TV아사히와의 인터뷰에서 “화기관제 레이더의 조사는 위험한 행위로, (한국이) 재발 방지책을 확실히 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한 것에 대해 2일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아울러 “이번 논란의 핵심은 우리 해군함정의 레이더 조준이 아니라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P-1)의 저고도 위협비행”이라며 일본이 만들어놓은 프레임 깨기에 나섰다.
광개토대왕함이 일본 P-1 초계기를 향해 사격통제(화기관제) 레이더를 조사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의 저공비행으로 우리 함정을 위협한 일본 측이 사과해야 한다는 입장을 공식 표명한 것.
국방부는 지난 2일 입장자료를 내고 “한일 국방 당국 간에 (레이더 갈등 관련) 사실 확인을 위해 계속 실무협의를 하자는 합의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동영상을 공개하고, 어제 TV아사히와의 인터뷰에서 고위당국자까지 나서서 일방적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는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일본 동영상 공개에 한국 반박 동영상 준비중=이와 함께 “일본 측이 공개한 동영상에서 보듯이 당시 우방국 함정이 공해상에서 조난 어선을 구조하고 있는 인도주의적인 상황에서 일본 초계기가 저공 위협 비행을 한 행위 자체가 매우 위험한 행위”라며 “우리 함정은 일본 초계기에 대해 (사격통제 레이더의 일종인) 추적레이더(STIR)를 조사하지 않았다”고 다시 한 번 밝혔다.
국방부는 이어 “일본은 더 이상 사실을 왜곡하는 행위를 중단하고 인도적 구조 활동 중이었던 우리 함정에 대해 위협적인 저공비행을 한 행위에 대해 사과해야 할 것이며, 실무협의를 추진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사토 마사히사 외무성 부대신(차관급)은 3일 트위터에 “(방위성이 공개한) 영상처럼 위협비행이 아니다”면서 “한국 측의 반증도 없다”도 주장했다. 그는 전날에도 한국 국방부가 저공비행을 이유로 일본에 사과를 요구한 것과 관련해 “초계기는 한국 구축함에서 수평 500m, 이격 고도 150m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항공법에 합치된다”며 “위협행위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야마다 히로시 방위성 정무관도 “자위대 초계기가 위협적인 저공비행 했다는 증거를 대라”면서 “자위대 초계기가 국제법에 따라 우호국으로서 대응한 것은 공개된 영상으로 증명됐다”고 주장했다.
국방부는 조만간 일본측 동영상 내용을 반박하는 동영상을 공개할 예정이다.
국방부는 현재 한일 레이더 갈등과 관련해 일본 주장을 반박하는 한글 및 영어 동영상을 제작하고 있으며, 제작이 끝나는 대로 유튜브에 올릴 계획이다.
앞서 일본 정부는 지난 28일 관련 동영상을 공개했고, 이에 같은 날 국방부는 역시 “깊은 우려와 유감”을 표명했다.
이날 국방부는 입장문을 통해 “광개토대왕함은 (조난당한 북한 선박에 대한) 정상적인 구조 활동 중이었으며 ‘우리 군이 일본 초계기에 대해 추적레이더(STIR)를 운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면서 “한일 당사자간 조속한 협의를 통해 상호 오해를 불식시키고 국방 분야 협력관계 발전을 모색하자는 취지에서 실무화상회의를 개최한 지 불과 하루 만에 일측이 영상자료를 공개한 데 대해 깊은 우려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오히려 인도주의적 구조 활동에 집중하고 있던 우리 함정에 일본 초계기가 저공 위협 비행을 한 것은 우방국으로서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라며 “일측이 공개한 영상자료는 단순히 일 초계기가 해상에서 선회하는 장면과 조종사의 대화 장면만이 담긴 것으로 일반 상식적인 측면에서 추적레이더를 조사했다는 일측 주장에 대한 객관적인 증거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우리 군은 어제 실시된 화상회의에서 우리 군함이 추적 레이더를 조사하지 않았다는 분석 결과를 충분히 설명했으며 일측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구체적인 근거 자료를 제시할 것을 요구했다”면서 “일측은 국제법과 무기체계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협의해 나가야 함에도 일방적인 내용을 담은 영상을 공개해 사실관계를 호도하고 있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한편, 전문가들은 한국 해군함정이 일본 초계기를 향해 사격통제 레이더를 조사했는지 여부를 판별하려면 당시 조사된 레이더빔의 주파수 특성만 공개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당시 조사된 레이더의 주파수 특성을 지금까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자중지란’ 일본 자충수 거듭 “한국 측 긴박한 상황 이해돼”=일본이 영상을 공개한 다음날인 지난달 29일 일본 방위성 간부는 한일 레이더 논란의 핵심 증거인 레이더 주파수 데이터는 기밀이라서 공개하지 못한다고 말했다고 일본 지지통신이 보도했다.
이 간부는 “어느 정도 정확하게 전자파를 수신했는지는 초계기의 능력에 관한 사항으로 공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영상을 분석한 우리 군 당국에 따르면, 영상 촬영 당시 일본 초계기와 우리 광개토대왕함의 최근접 거리는 500m이고 고도는 150m로 나타났다.
특히 일본 P-1 초계기는 광개토대왕함 150m 상공으로 저공비행을 했으며 한 차례는 함교 위로, 또 한 차례는 함정 위로 날았다.
군 관계자들은 해상에서 고도 150m 비행 및 500m 근접은 함정에 엄청난 위협을 주는 행위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일본 측은 고도 150m 저공비행에 대해 ICAO 규정을 준수한 것이라고 우리 측에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ICAO(국제민간항공기구) 규정에 의하면 항공기는 고도 150m 아래로 비행하면 항공기가 위험에 처할 수 있어 그 이상 고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초계기를 민항기 규정에 따라 운영했다는 얘기인데 이 역시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다.
공개된 영상에서 일본 초계기 승무원들은 스스로를 “This is Japan Navy(여기는 일본 해군이다)”라며 자신들을 ‘해군’으로 불렀기 때문이다.
일본은 ‘평화헌법’에 따라 정식 군대를 보유할 수 없어 우리의 군에 해당하는 조직을 ‘자위대’로 부른다. 일본 해상자위대는 영어로 ‘Japan Maritime Self-Defense Forces(JMSDF)로 표기한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스스로를 '해군'이라고 지칭해 놓고, 상황이 불리해지자 다시 '군용 항공기'가 아닌 '민항기라는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정식 군대를 보유할 수 없도록 헌법을 고쳐 군사 조직을 '자위대'라 부른다. 눈 가리고 아웅 격으로 군대 유사 조직을 보유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현재 아베 정권은 헌법을 고쳐 정식 군대를 보유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하지만 일본 내부에서조차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결국 이번 논란도 이런 내부의 목소리를 잠재우고 정식 군대 보유의 논리를 강화하기 위한 아베 정권의 ‘헐리우드 액션’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아울러 일본 내부에서 일본이 공개한 영상이 일본보다 한국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31일 오노 지로 전 참의원 의원은 트위터에 지난 29일 일본 정부가 공개한 동영상에 대해 “동영상은(동영상을 보고) 우리(일본) 쪽 주장보다도 한국 측의 긴박한 일촉즉발의 상황이 잘 이해됐다”는 글을 남겼다.
그는 “북한 선박에 대해 작전행동 중인 (한국) 군함에 이유 없이 접근하는 것은 극히 위험하며 경솔하다”며 당시 일본 초계기의 대응에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했다.
오노 전 의원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시절인 지난 2001년부터 4년 4개월간 총리 비서관을 맡았다.
sooh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