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기준법 위반 1·2심 엇갈려
회사가 정한 근무시간이 주52시간을 초과하더라도, 실제 근로자가 자유롭게 사용한 시간이 있다면 그만큼은 빼고 근로시간을 계산을 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사측의 지휘·감독이 없는 업무 대기시간은 일을 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판단으로, 법정 근로시간을 계산하는 기준을 세분화 한 판결로 받아들여진다.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운송회사 코레일네트웍스 곽노상 대표에 대한 상고심에서 벌금 5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3일 밝혔다.
버스운전기사 A씨는 2017년 1월부터 3개월간 코레일네트웍스에 고용 돼 광명역-사당역 구간 시내버스를 운행했다. 코레일네트웍스는 A씨와 근무조건을 합의하면서 1일 19시간을 일하고, 그 중 2시간은 휴게시간으로 하되 나머지 17시간은 대기시간에 포함해 모두 근무시간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격일제로 일했기 때문에 일주일에 3.5일을 일한 셈이었다.
A씨는 회사를 그만 둔 뒤 곽 대표를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하루에 17시간씩 주당 3.5일을 일했으면 평균 59.5시간을 일한 것인데, 법정 근로시간 최대치인 52시간을 7.5시간 초과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검찰은 이 주장을 받아들여 곽 대표를 기소했다.
판결은 엇갈렸다. 1심 재판부는 곽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사 주장의 근로시간에는 대기시간도 포함되고, 대기시간에 A씨가 실제로 근무했는지, 휴게했는지를 살펴봐야 하는데 증명되지 않았다”고 했다. 대기시간을 사용자 지휘·감독 없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면 실제 근로시간은 줄어들 여지가 있다는 취지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항소심 재판부는 “육상운송업은 특성상 운행 사이에 대기시간이 있다”며 “대기시간 중에는 휴식은 물론 운행 차량의 주유, 세차, 청소 등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이를 근무시간과 휴게시간 중 어느 것으로 볼 것인지 또는 각각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명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고 봤다. A씨의 운행 사이 평균 대기시간은 30~40분에 불과한데, 휴게실 이동 시간 등을 고려하면 휴게시간으로 충분히 활용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곽 대표에게 근로기준법 위반 유죄를 인정하고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근로감독관의 조사결과에 의할 때, 회사 운전근로자가 광명역에 도착해 다음 버스운행을 대기하는 동안 사용자가 휴식방법에 관해 지시하거나 대기시간 중 운전근로자들이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은 정황은 없다”고 판단했다.
운전근로자들은 배차시간만 정확히 지킨다면 대기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으므로 식사, 수면, 은행업무 등 각자 알아서 그 시간을 활용했던 만큼 근로시간이 아니라 휴게시간으로 봐야 한다는 판단이다.
또 A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근무시간 동안 주유, 세차, 청소 등을 한 것으로 보더라도 이는 대부분 휴식시간에 포함되지 않는 첫 차 운행 전과 막차 운행 후에 이뤄졌고, 간혹 휴식시간에 이뤄졌다 하더라도 그리 많은 시간이 소요됐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봤다.
김진원 기자/jin1@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