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외교관 위안난성(袁南生)이 발표한 글이 화제가 되고 있다. 위안은 미국 샌프란시스코 주재 총영사를 지내고 현재는 중국 외교학원에 재직하고 있는 베테랑 외교관이다. 그는 수천년간 중국 외교가 복수의 적과 대치하지 않는 것을 불문율로 해왔고, 사방에서 복수의 적과 대치하는 것을 최악의 외교전략으로 간주해 왔다고 한다. 예컨대 의화단의 난이 발생했을 때 당시 청국의 잘못된 판단으로 러시아, 영국, 미국, 일본 등의 개입을 초래했고 결국 베이징이 함락되는 수모를 겪었다고 했다.
그는 일본 사례도 인용하며 태평양 개전 직전 인도차이나반도에 무력진주한 결과 미국, 영국, 중국, 네덜란드 등 소위 ‘ABCD포위진’이 구성돼 일본을 결국 패퇴시킨 역사도 상기시켰다. 그의 글은 현재 중국이 미국과 전략적 경쟁을 벌이면서 미국뿐 아니라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동남아 및 유럽 국가들과 대립하게 된 상황을 비판하는 의미로 해석되면서 중국 내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흥미롭게도 미국에서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글이 주목받고 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최근 마이클 만델바움 저서를 인용해 미국이 3회에 걸친 20세기의 대전쟁, 즉 제1·2차 세계대전과 냉전에서 승전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가장 강력한 동맹국들과 연합을 구축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아시아 국가들과 동맹 및 유럽에서의 나토 등을 경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이 변화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중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국제사회가 불안정할수록 동맹과 우방국을 다수 확보하고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외교의 관건이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불확실성이 더해지고 있는 한반도 안보환경을 생각할 때 한국 외교전략가들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대선을 앞둔 트럼프 행정부는 연일 대중 대결전선을 확대하고 있다. 남중국해에 항공모함을 파견해 인도·태평양 전략 동참국들인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일본뿐 아니라 동남아국가 등과 연합 해상훈련을 실시했다. 중국도 해·공군 대규모 군사훈련을 벌이고 지난 7월 남중국해에선 ‘괌 킬러’로 불리는 DF-26·DF-21 중거리미사일 발사훈련도 감행했다.
미중 경쟁에 더해 우리에겐 북한발 불안요인도 있다. 비록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례적으로 미안하다는 사과를 전해오긴 했지만 연평도 근해에서 벌어진 비인도적인 사건은 남북 합의의 신뢰성을 훼손하기에 충분하다. 우리 안보이익을 지원해 줄 다수의 우방국과 연대를 결속하는데 외교의 중점을 둬야 한다. 우선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항행자유의 원칙’을 견지하기 위한 목적에서 참가해 한미동맹을 공고히 하려는 의지를 실제 행동으로 보일 필요가 있다. 악화일로의 일본과의 안보협력관계도 스가 내각 출범을 계기로 시급히 회복해야 한다. 자유시장경제를 공유하면서 한국과 유사한 위상을 가진 오스트레일리아, 인도, 캐나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과도 국제적인 민주주의와 평화연대 확대라는 관점에서 관계를 재구축해야 한다.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는 안보정세 속에서 우리 외교가 고립되는 것 아닌가하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선제적 안보외교의 추진이 더욱 절실하다. 〈박영준 국방대학교 안보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