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지에서는 “어떻게 믿고 사업하나” 목소리
정부 “LH 방지법·부동산 사전신고제 안착 필요”
[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의 땅 투기 의혹이 제기되면서 LH가 주축이 된 서울 도심 내 주택공급 사업의 추진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정부는 사업 후보지를 우선 발표하고, 이후 ‘공직자 부동산거래 사전신고제’ 등이 도입되면 투기 의심사례를 솎아내 수사의뢰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공급대책을 차질 없이 추진하면서도 LH 등 공공이 참여한 사업에 대한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다만, 현장에서는 LH 사태를 계기로 ‘어떻게 믿고 집과 땅을 내어주느냐’는 분위기가 확산해 사업 추진부터 난항이 예상되고 있다.
지난 1월 공공재개발 시범사업 후보지로 선정된 서울 동작구 흑석동 흑석뉴타운2구역 일대의 모습. [헤럴드경제DB] |
24일 정부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공공재개발 2차 후보지를 이달 말 공개한다. 2·4 대책 추진과 관련해서는 지자체·건설사·디벨로퍼 등이 제안한 172곳의 입지 중 선도구역으로 관리할 곳을 다음 주부터 차례로 발표한다.
정부는 당초 계획대로 밀고 나가고 있지만, 최근 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으로 공공이 참여하는 사업에 대한 시장의 불신은 커진 상태다. LH는 이번에 논란이 된 3기 신도시뿐만 아니라 서울을 중심으로 추진하는 공공재개발(5·6대책), 공공재건축(8·4대책),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도심 공공주택 복합개발(2·4대책) 등에도 참여한다.
정부는 앞으로 발표할 신규택지에 대해 사전조사로 투기세력을 미리 가려내겠다는 방침을 세웠으나, 도심 내 개발 예정지에 대해서는 일정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만 밝혔다. 이렇다 보니 LH의 손길이 닿은 건 매한가지인데 조사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국토부는 이와 관련해 현재 논의 중인 내부 통제 시스템이 구축되면 공직자 투기 의심사례도 추후 자연스럽게 걸러낼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정부는 이달 말 ‘투기근절 및 재발방지방안’과 ‘LH 환골탈태 방안’을 확정해 발표한다. LH 직원의 재산등록을 의무화하는 ‘공직자윤리법’을 비롯해 ‘공공주택특별법’, ‘LH 법’ 개정안은 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2·4 대책 후속법인이 이달 중 국회에서 통과되면 6월 시행되는데, 그때는 LH 방지법이나 공직자 부동산거래 사전신고제 등이 도입돼 내부 통제 시스템에 의해 투기를 걸러낼 수 있게 된다”면서 “의심사례가 확인되면 우선 조사를 하고 필요하면 수사의뢰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정부가 입지를 선정하고 토지 수용권이 발동되는 신규택지와 달리, 도심 내 공급사업은 최종적으로 주민 동의가 있어야 사업 추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사업 성격이 다르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서울 마포구 대흥5구역 내 공공재개발을 반대한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는 모습. 현재 해당 플래카드는 철거된 상태다. [헤럴드경제DB] |
하지만, 곳곳에서는 “어떻게 믿고 사업을 하느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2차 공공재개발 후보지에 신청한 강동구 A구역의 일부 소유주 사이에선 사전 정보를 입수한 사람의 투기가 있었을지 모른다는 의심이 번지고 있다. 마포구 B구역에서도 LH 사태가 발생한 후 반대 목소리에 더 힘이 실렸다는 전언이 이어졌다. 이 지역의 한 공인중개사는 “그동안 사업 추진이 잘 안 됐지만, 그렇다고 신뢰할 수 없는 기관에 땅과 집을 넘길 순 없다는 게 많은 주민의 생각”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도심 내 사업이 추진되려면 주민 동의가 관건이지만, 개발 정보를 미리 알았다면 분명히 이득을 볼 수 있는 지점이 있다고 봤다. 공공재개발은 신규구역(기존 정비구역 제외)의 경우 사업 공모일인 지난해 9월 21일 기준으로 입주권을 준다. 2·4 대책 관련 사업은 대책 발표일인 2월 4일 이전에 부동산을 사뒀다면 현금청산을 면할 수 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날짜를 못 박는 것 자체가 혜택의 기준점이 생기는 것”이라며 “단순히 주민동의 과정이 있기 때문에 투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단언할 수 없고, 오히려 나중에 의심사례가 발견되면 파장이 더 클 것”이라고 봤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2·4 대책을 발표할 때 사업을 우선 추진할 곳(222곳)도 언급됐었다”면서 “주민 동의율이나 시세, 노후건축물 등을 파악해 사업 가능성이 큰 곳을 미리 알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공공이 참여하는 사업은 한두사람이 (투기로) 장난을 친다고 해서 추진되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한 이득이 된다는 것을 알고 접근한 공직자나 공공기관 직원이 단 한 사람이라도 나온다면 이건 다른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y2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