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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보니 Young한데? 완전 MZ인데요?…‘최고의 유산’ 현대차 포니 스토리 [여車저車]
정주영이 쓴 ‘반백년’ 포니 스토리, ‘손자’ 정의선이 이어
이탈리아 ‘현대 리유니온’ 행사…‘포니쿠페 콘셉트’ 공개

1975년 첫 독자 모델 '포니' 출시…한국 車역사 전환점
고유 모델 개발 9번째 국가에…1982년 60여개국 수출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왼쪽)와 정의선 회장이 포니 쿠페 복원 차량에 탑승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현대차는 이탈리아 레이크 코모에서 ‘현대 리유니온’ 행사를 열고, 지난해 11월 시작한 '포니 쿠페 콘셉트' 복원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선보였다. [현대차 제공]

[헤럴드경제=서재근 기자] “정주영 선대 회장님과 정세영 회장님, 정몽구 명예회장님,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 오늘날 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현대차는 1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레이크 코모에서 ‘현대 리유니온’ 행사를 열고 완벽하게 복원한 ‘포니 쿠페 콘셉트’ 모델을 최초로 공개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포니 쿠페 콘셉트’ 복원 소감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현대차 첫 독자 모델이자 '대한민국 첫 국산차'라는 타이틀을 가진 ‘포니’의 반백년 역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포니 쿠페 콘셉트’가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1974년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 이후 무려 49년 만이다.

현대차가 대대적으로 복원 프로젝트에 나선 것은 포니 개발을 통해 자동차를 국가의 중추 수출산업으로 육성해 국민들의 더 나은 삶을 염원했던 정주영 선대회장의 수출보국 정신과 포니 쿠페를 앞세워 글로벌 브랜드로 나아가고자 했던 당시 임직원들의 열정을 되짚어 보기 위해서다.

정의선 회장은 “회사 내부에서도 ‘선대회장을 비롯해 우리 모두가 노력했었다’는 그런 좋은 기억, 그런 것들이 필요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며 “이제 또 그것을 바탕으로 또 계속 새롭게 해 나가야 한다. 역사적 과업을 잇는 과정이 직원들한테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고(故) 정주영 현대차 선대회장이 1975년 12월 생산을 시작한 ‘포니’ 앞에서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그는 한국 국가대표로 활약할 고유 모델의 필요성을 느끼고, 첫 독자 생산모델이자 대한민국 최초의 국산 자동차 ‘포니’를 개발했다. [현대차 제공]

‘첫 국산차’ 포니의 탄생은 고(故) 정주영 선대회장의 혜안과 정세영 전 회장, 정몽구 명예회장의 리더십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정의선 회장의 할아버지인 정주영 선대 회장은 자동차를 국가의 중추 수출산업으로 발전시킨 초석을 다졌고, 정주영 선대 회장의 동생인 고 정세영 회장은 포니 개발에 크게 기여해 ‘포니정’으로 불린다.

1940년부터 정비소를 운영하며 자동차의 구조와 기계적인 원리를 터득한 정주영 선대회장은 독립을 맞이한 이후 현대차그룹의 뿌리인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설립했다.

한 나라의 국토를 인체에 비유하며 ‘도로는 혈관과 같고 자동차는 그 혈관 속을 흐르는 피와 같다’는 생각을 했던 정주영 선대회장은 대한민국 첫 대량 양산형 고유 모델을 개발하겠다는 결단을 내리고 포니 개발에 착수했다. 각고의 노력으로 1975년 마침내 현대차의 첫 독자 모델 포니가 시장에 첫발을 내디뎠다.

포니의 밑거름은 성장의 원천이 됐다. 정몽구 현대차 명예회장은 고(故) 정주영 선대회장의 인본주의를 이어받아 국내 완성차의 품질을 높이는 작업에 몰두했다. [현대차 제공]

포니 출시는 한국 자동차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걸음마 수준이던 국내 승용차 시장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으며, 자동차를 대한민국 주력 수출 품목으로 성장시켰다.

특히 현대차가 1975년 12월 포니 양산에 성공하면서 한국은 당시 기존 8개 자동차 공업국(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독일, 일본, 스웨덴, 체코)에 이어 9번째 고유 모델 출시 국가 대열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포니는 출시되자마자 흥행 잭팟을 터뜨렸다. 포니가 출시된 1976년 당시, 국내 승용차 판매 대수는 총 2만4618대였는데, 포니 단일 모델이 그해 1만726대가 판매되면서 44%의 점유율을 차지했고, 이후 포니2가 출시된 1982년에는 국내 승용차 판매 점유율의 67%(포니1, 2 합산 기준)를 차지했다. 포니는 출시 첫해부터 포니1이 단종되는 1985년까지, 약 10년간 대한민국 1위 모델로 자리매김했다.

1974 포니 쿠페 콘셉트 모델. [현대차 제공]
포니 쿠페 복원 차량. [현대차 제공]

포니는 해외 수출을 목표로 개발된 차였다. 국내 첫 출고 시점보다 보름 정도 이른 1976년 2월 중순, 사우디아라비아에 진출한 현대건설에 포니 15대를 시험 수출했다. 현대차의 수출에 대한 높은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해 7월 에콰도르에 포니 5대를 수출한 것을 시작으로 포니와 포니 픽업은 중동, 중남미, 아프리카 등지에 1019대가 수출됐다.

이듬해인 1977년에는 7427대를 30개국에 수출했다. 1978년에는 1만8317대를 40개국에 수출했다. 수출 지역은 중남미,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등으로 늘었다. 현대차의 수출 성과에 고무된 정부는 1979년에 자동차 산업을 10대 수출전략산업으로 선정했다. 이후 1982년 7월에 포니는 단일 차종으로는 국내 최초로 누적 생산 30만 대를 돌파했다. 당시 수출 대상국은 약 60개국에 달했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포니는 글로벌 시장에 수출되어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리는 ‘달리는 국기’ 역할을 톡톡히 한 모델”이라며 “포니는 현대차가 오늘날 다양한 라인업을 개발하고 수출하는 데 중요한 초석이 된 물리적 유산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1975년 생산을 시작한 포니 양산모델. [현대차 제공]
포니의 디자인 헤리티지는 아이오닉5 등 E-GMP를 탑재한 전용 전기차로 이어졌다. [현대차 제공]
likehyo8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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