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과 K-드라마가 한국을 대표하는 것임에 어느 누구도 반대 의견을 제시하긴 힘들 것이다. 외국 사람들과 만나서 국적이 ‘코리안’이라고 하면 반드시 세 가지 이야기를 한다. ‘기생충’ ‘서울’ ‘K-팝’.
‘기생충’과 관련해서는 영화 설정이 너무 충격으로 다가온다며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묻는 것이 일반적이고, ‘서울’은 밤문화 및 술문화, ‘K-팝’은 블랙핑크로 이어진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미국 전역에서 울려 퍼질 때 신기함을 넘어 감동이 몰려왔는데 이제는 너무나도 당연한 세상이 된 것이다. 내가 태어나고 자랄 때의 한국과 내 아이가 자라는 한국은 아예 다른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큰 변화 속에서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은 과연 얼마나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았을까.
미디어 과잉 시대라고 할 만큼 거의 모든 사람은 소셜네트워크를 이용해 사람들과 그리고 세상과 소통하고 배우고 느낀다. 세상 모든 사람의 생활이 아주 쉽게 내 손 안에서부터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방대한 세상사 모습 속에서 이러한 다양함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는지 가끔 자문한다.
그저 ‘다양한 사람이 어우러져 사는구나’ 정도를 느끼고 말기에는 우리 사회는 이미 그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더구나 점점 저출산의 문제해결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다양한 사람의 한국 내 거주는 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정책적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제도와 정책들은 우리 사회 내 다양성을 인정하되 통합을 어떠한 방향으로 이뤄낼 것이냐에 집중해야 한다. 통합과 다양성의 존중은 같아보이지만 그 합의 지점이 결코 쉽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올해 8월 발표된 2023년 교육기본통계에 의하면 2022년 초·중·고교 다문화가정 학생은 지난해보다 7.4% 증가한 18만1178명으로,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명실상부 다문화사회에 들어선 것이다. 이러한 상황만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단일 민족이라는 문화·역사적 관점을 이제는 좀 더 폭넓게 봐야 할 시점에 이미 오래전 도달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양한 사회문화적·경제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과 하나의 공동체에서 함께 사는 일이 단순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그 역시 편견의 한 종류라는 생각이다. 우리나라의 노래가, 드라마가 외국인들의 일상에 스며든 만큼 우리나라 역시 다양한 사람과 함께 성장할 수 있고 앞으로는 이들과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당위를 가진다.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우리의 문화 안에서 그들이 함께 녹아들어 생활할 수 있는 넉넉함을 준비해둘 때 비로소 ‘다양성’과 ‘통합’이라는 가치가 공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방법은 멀리 있지 않고 복잡하지 않다. 다양한 정책을 만드는 일이야 정책입안자의 영역일 테지만 우리가 생활 속에서 실천할 방법은 다양하다. 길을 걷다가 길을 모르는 외국인이 말을 걸어왔을 때 더욱 친절한 미소로 응대하는 것도, 내 아이 학교의 외국인 친구가 전학 왔을 때 먼저 손을 내밀어보는 것도, 나아가 주변에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친구들과 격의 없는 시선으로 대화를 나눠보는 것도 모두 그 방법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기본이 될 때 그 넉넉함과 친절함은 배가 될 것이다.
이윤진 서원대 사회복지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