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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무너진 주거사다리

목돈이 부족한 서민들의 신혼집, 혹은 사회로 막 진출하는 청년들의 첫 보금자리는 보통 빌라와 다가구 오피스텔 등에서 시작된다. 주차장이 부족하고, 보안과 커뮤니티 시설 등이 취약하다는 걸 이들이 모를리 없다. 그럼에도 고가의 아파트 전세를 감당할 경제력이 부족한 이들은 이곳에 보금자리를 정한다. 차곡차곡 자금을 모아 아파트 등 상위 주거 형태로 이동을 하는 꿈을 키워간다. 그래서 빌라와 다가구, 오피스텔을 서민의 주거사다리로 부른다. 필자에게도 어릴 적 빌라에서 살았던 기억은 소박하지만, 따뜻했던 추억으로 남아 있다.

이처럼 빌라와 다가구, 오피스텔은 주거 생태계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핵심 구성 요소다. 서민들의 주거 안정성을 담보하는 등의 사회 전반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이 막대하다. 묵묵히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듬직한 일꾼과 같다. 그런데 이들 생태계에 비상이 걸렸다. 존립 자체가 위태롭다. 특히 빌라 시장은 상황이 심각하다.

‘빌라는 가격이 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매매로 사는 대신 전세로 사는 것을 권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빌라는 아파트에 들어갈 여력이 안되는 이들의 전세 수요를 상당 부분 흡수해 왔다. 그런데 이제 빌라 전세를 아무도 살려하지 않는다. 최근 경제만랩의 통계가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1~10월 서울 빌라(다세대·연립주택) 전월세 거래량은 11만1440건으로 나타났다. 이 중 월세 거래량은 5만1984건으로으로 집계됐다. 이는 서울부동산정보광장이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1년(1~10월 기준) 역대 최대치다. 공급 물량도 급감하고 있다. 올해 1∼9월 서울 다세대주택 건설 인허가 물량은 1만3492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6만2530가구)보다 73.4% 줄었다 한다. 전세 사기의 공포가 빌라의 임대차 시장 생태계를 완전히 바꿔놓고 있는 것이다.

‘화곡동 빌라왕’, ‘미추홀구 건축왕’ 처럼 전세사기는 일부 지역에 국한된 것처럼 느껴졌다. 정부가 특별법을 내놓고, 구제 대책을 내놓으면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믿음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보기좋게 빗나갔다. 최근에도 부산에서 100명 넘는 피해자가 돌려받지 못한 돈이 200억원에 달하는 전세사기 사건 보도가 있었다. 지난 6일 국토교통부의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는 258건이 추가됐다. 현재 누적 피해건수는 9367건이다. 곧 1만건을 넘어선다.

민간의 영역에서 벌어진 시장 교란을 정부가 온전히 책임지는 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서민의 주거사다리였던 빌라와 다가구 등의 생태계가 붕괴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월세로 임대차 시장이 급격히 개편된다면 그렇잖아도 팍팍한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더욱 나빠질 것이다. 서민의 주거사다리에서 마저 떠밀리면 이들이 갈 곳은 없다. 빌라 생태계의 복원이 절실한 이유다. 다행히도 신임 국토교통부 후보자가 현 상황에 깊은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박상우 후보자는 “아파트에 집중된 공급 형태를 다양화해야 한다”면서 “오랫동안 갖고 있던 아파트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각기 본연의 역할을 수행 중인 주거 생태계가 온전히 복원되길 기대해 본다.

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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