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증원’을 둘러싼 의·정갈등이 파국을 맞으며 우려했던 ‘의료 공백’이 현실화됐다. 서울 ‘빅5’병원을 비롯한 지방 주요병원 전공의들이 무더기로 의료현장을 떠나며 전국은 의료파행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일부 병원 응급실은 마비됐고, 외래진료도 중단됐다. 당장 응급치료가 급한 환자와 보호자는 절규 상태다. 눈 수술 후 치료가 급한 4살짜리 아이는 병원을 찾았다가 결국 발길을 돌렸다고 한다. 어느 4기 암환자 역시 진료가 취소돼 허탈한 심정으로 집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런 뉴스에 황당하고도 안타까울 뿐이다. 더 큰 문제는 의사들의 반발 수위가 더 고조될 분위기여서 치명적인 의료대란마저 예고된다는 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20일 국무회의에서 “의대 2000명 증원은 최소한의 규모”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역 필수 의료, 중증 진료에 대해 정당하게 보상하고 사법리스크를 줄여 여러분이 소신껏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책임지고 만들겠다”며 전공의들의 집단행동 중단을 요청했다. 하지만 전공의를 대표하는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입장은 강경하다. 대전협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정부에 ‘의대 증원 전면 백지화’를 요구했다. 정부가 전공의들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리는 것도 기본권 침해라고 강력 반발했다. 현재로선 간극이 좁혀질 기미는 없어 보인다.
국민들만 고통스러운 일이다. 수술 날짜만 손꼽아 기다렸는데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보류 통보를 받은 환자의 절망감을 어찌할 것인가. 의대 정원 숫자를 놓고 의료계를 충분히 설득하지 못한 정부의 미흡한 정책에 1차적 책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 손해가 예상된다고 환자를 볼모로 잡은 의사들의 집단 모럴해저드 심각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의사는 그냥 직업이 아닌 ‘귀한 직업’이다. 의사 자녀를 둔 이에게 “좋겠다”고 부러워하는 것은 고액연봉 여부를 떠나 사람 생명을 다루는 소중한 직업이라는 존중심 때문일 것이다. 환자를 버리는 의사는 존재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의사 수(2021년)는 2.6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 3.7명보다 훨씬 적은 숫자다. 그런데도 27년간 의대 정원은 단 1명도 늘어나지 않았다. 의대 증원 문제가 그동안 굳건한 카르텔에 갇혀 있었고, 성역이 돼왔음을 의미한다. 국민 10명중 8명이 의대 증원에 찬성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증원 숫자 외에도 수가(건보가 의사에게 주는 돈)나 소송 문제 등 의사들이 파업을 불사하는 이유를 모르지는 않다. 하지만 환자 곁을 떠나면서의 집단행동은 아무리 좋은 명분을 내세워도 정당화될 수 없다. 환자는 의사들의 바리케이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