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야당의 압승으로 끝나자 대통령실이 인적쇄신에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은 “총선에 나타난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들어 국정을 쇄신하고 경제와 민생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대통령실을 통해 11일 밝혔다. 한덕수 국무총리와 이관섭 비서실장, 성태윤 정책실장 등 수석비서관 5명이 일제히 사의를 표명했다. 대통령실이 민심을 적극 수용하고 즉각적인 쇄신 의지를 밝힌 것은 다행이다. 여당도 패배 수습을 위한 재정비에 돌입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같은날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 선택을 받기에 부족했던 우리 당을 대표해 국민께 사과드린다”며 비대위원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
범야권 192석, 여당 108석으로 헌정사상 최대 격차의 ‘여소야대’를 만든 민심은 정부와 여당에 협치·소통은 물론이고 보수 쇄신·재정립을 요구하고 있다. 집권당은 바뀌었지만 보수 대 진보의 의석 분포로는 이번 총선 결과가 4년 전과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20년 21대 총선에선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한 범진보진영이 189석을 차지했고,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을 비롯한 범보수진영 당선자는 111명이었다. 22대 총선에서 야권 당선자 중 ‘개혁보수’를 내세운 개혁신당 소속을 제외하면 범진보는 직전 총선과 같은 189석으로 집계된다. 그 사이 보수정부가 새롭게 들어섰지만 이념 지형을 바꾸지는 못했다. 국민은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기엔 보수정부의 국정운영이 미흡하다고 평가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올해 들어 전국에서 24차례의 민생토론회를 주재했다. 반도체산업 성장전략, 연구개발(R&D) 지원,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늘봄학교 전국확대, 출산 장려 등 분야별·지역별로 240개 정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총선 결과는 정부의 이같은 노력이 민심의 확고한 지지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국민은 정부의 구체적인 계획과 실행능력에 의문을 표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선거운동 기간 내내 ‘야당 심판’을 주요한 기조로 내세움으로써 집권당으로서의 비전과 정책을 보여주는데 실패했다.
인적 쇄신은 시작이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대통령실·정부의 과감한 인사개편과 여당 지도부 구성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정부는 연금·노동·교육 개혁과 민생안정·경제성장·외교안보의 구체적인 계획과 실행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여당은 보수의 이념과 철학·정책의 전면적인 재정립에 나서야 한다. 구호 뿐인 보수, 진보의 ‘반정립’으로서의 보수가 아니라 민생과 성장, 안보의 확실한 대안임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남은 3년의 국정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재집권을 위해 거대야당과 경쟁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