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내 면세점 모습. [연합]

[헤럴드경제=김희량 기자] “백화점에서 품절된 480만원짜리 명품 시계가 면세점에서 500만원이 넘더라고요. 세금까지 붙으면 더 비싸져 결국 포기하고 빈손으로 나왔습니다.” (30대 직장인)

실적 회복을 기대하던 면세점 업계가 강달러로 고민이 깊어졌다. 고물가에 따른 소비 위축이 이어지는 가운데 가격 경쟁력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지난 16일 오전 원·달러 환율은 1400선까지 올라갔다. 외환당국이 구두개입에 나선 후에야 낙폭이 줄며 1394.5원에 마감됐다. 달러당 1400원 돌파는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2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발 고금리 충격 이후 4번째다.

고환율은 면세업계에는 악재다. 특히 면세점에서 판매하는 가방, 쥬얼리, 시계 등 고가 제품이 사실상 백화점보다 비싼 가격 역전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면세점에서 제품을 살 이유가 없어진다.

17일 기준 면세점에서 판매하는 일본 브랜드 그랜드세이코 시계 가격은 약 5093달러(705만원)이었다. 단순 비교 시 국내 매장 판매 가격(820만원)보다 저렴해 보이지만, 여기에 관세(과세 가격의 8%), 개별소비세, 교육세, 부가세를 추가하면 국내 매장가를 웃돈다. 관세청의 여행자 휴대품 예상 세액 조회 시스템에 따르면 5093달러(시계 기준) 제품을 구매할 경우 예상세액(달러당 1355.88원 기준)은 약184만원이다. 매장가보다 약 70만원을 더 내는 셈이다.

17일 기준 일본 브랜드 그랜드세이코 시계 면세점가. [신라면세점 홈페이지]

대형 면세점 관계자는 “수입품을 대부분 직매입하는 면세업의 특성상 환율에 따른 원가 상승 부담이 크게 작용한다”며 “가격이 오르면 면세점을 이용하는 내·외국인 모두 구매를 주저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면세점을 이용한 외국인 소비자들이 대부분 달러의 영향을 받는 중국·일본이라는 점에서 문제는 더 크다”고 덧붙였다.

쌓이는 재고도 부담이다. 지속적인 환율 상승은 원부자재 가격을 올리고, 이는 소비를 위축시킨다. 재고 및 재고 금액도 환율에 따라 증가한다.

면세 업계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롯데면세점을 운영하는 호텔롯데는 이달 사업보고서에서 모든 변수가 동일한 상황에서 미국 달러 환율이 10% 상승할 경우(2023년 말 기준) 629억3200만원의 세전 손실에 영향을 끼친다고 명시했다.

면세점은 체험 공간과 팝업스토어를 늘리고, 중저가 위주의 K-패션 품목을 강화하며 대응하고 있다. 여기에 환율 보상 행사를 마련해 부담을 낮추기 위한 노력도 이어가고 있다.

최근 면세점에 향수 품목이 늘어난 것도 이런 상황을 반영한 변화다. 향수의 원가율은 5%~15% 내외다. 유통사가 이윤을 남기기 유리한 품목이다. 올해부터 면세 한도가 100㎖로 상향되면서 면세점에 매출과 영업이익 확대를 꾀할 수 있는 상품으로 알려져 있다.

면세점 관계자는 “환율로 판매가가 오르면 내국인 고객은 이를 가격 인상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며 “달러, 위안, 엔 환율을 주의 깊게 살피는 이유”라고 했다.

신세계면세점이 명동점에서 아르마니 뷰티팝업매장을 진행한 모습. 모델들이 제품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세계면세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