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자료 20억·재산분할 1조3808억
SK그룹, 파장 예의주시…주가는 급등
SK㈜지분·대법원 최종심·그룹 사업재편 관건
서울고법 가사2부는 30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에서 “원고가 피고(노 관장)에게 위자료 20억원, 재산분할로 1조3808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사진은 지난달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이혼 소송 항소심 공판에 나란히 출석하는 최 회장과 노 관장. [연합] |
[헤럴드경제=정윤희·김은희·한영대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2심에서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도 재산분할 대상이고, 이에 따라 1조3808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오면서 SK그룹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1심을 뒤집고 최 회장 보유 그룹 지주사 지분까지 재산분할 대상이 되면서 향후 SK그룹의 지배구조가 변화할 가능성에 관심이 쏠린다. 최근 SK그룹은 내달 열리는 확대경영회의를 앞두고 그룹 주요 사업의 ‘리밸런싱’에 착수한 상태인 만큼, 이번 항소심 판결이 향후 그룹 경영에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30일 서울고법 가사2부(김시철 김옥곤 이동현 부장판사)는 이날 항소심 판결에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20억원, 재산분할로 1조3808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지난 2022년 12월 1심 재판부가 인정한 위자료 1억원과 재산분할 665억원에서 대폭 늘어난 금액이다. 특히, 재산분할은 현재까지 알려진 역대 최대 규모다.
무엇보다 이번 판결은 1심과 달리 SK㈜ 지분을 재산분할 대상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SK에 치명타가 됐다는 분석이다. 실제 1심과 상당한 온도차가 있는 항소심 결과에 SK그룹에서는 말을 아끼면서도 당혹스러운 분위기가 역력하다. 당초 예상보다 재산분할 금액이 커진데다 재판부가 최 회장의 SK(주) 지분도 분할 대상으로 명시하면서 그룹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그룹을 지배하는 지주사 지분이 흔들릴 경우 그룹 전체에 미칠 파장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3월 말 기준으로 SK㈜ 지분 17.73%(1297만5472주)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지주회사인 SK㈜를 통해 다른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다. SK㈜는 SK텔레콤(30.57%), SK이노베이션(36.22%), SK스퀘어(30.55%), SKC(40.6%) 등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전에는 SK그룹의 지배구조가 ‘최 회장→SK C&C→SK㈜→사업회사’의 구조였으나, 2015년 SK C&C와 SK㈜의 합병이 이뤄지면서 ‘최 회장→SK㈜→사업 자회사’로 단순화됐다. 문제는 당장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최 회장 측 SK㈜ 지분이 25.57%에 불과해 재계 안팎에서는 경영권 방어에 취약하다는 평가도 나온다는 점이다.
여기에 재판부가 “SK그룹이 1992년 태평양증권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약 300억원을 사용하고 이동통신 사업에 진출하는데 노 전 대통령이 보호막 역할을 했다”며 노 관장 측의 주장을 인정한 데 대해서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최 회장 측 변호인단은 그간 “SK그룹에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유입된 적 없다”며 “이는 지난 1995년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 때도 이미 확인된 사실”이라고 주장해왔다. 최 회장은 재판에서 자신의 결혼 탓에 그룹이 정경유착으로 성장한 기업으로 잘못 인식됐다며 이번 판결이 오명의 굴레를 벗어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SK 서린사옥. [SK 제공] |
SK그룹의 예상을 깬 판결이 나오면서 최태원 회장 변호인단은 즉각 대법원에 상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를 통해 2심 판결의 부적절성을 다툴 것이란 전망이다. 특히 SK㈜ 지분의 재산분할 대상 결정을 뒤집고 1조4000억원에 달하는 지급 규모 액수를 대폭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관측된다.
최악의 경우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 판결이 대법원에서도 확정된다면 최 회장은 보유 지분을 매각하거나 주식담보대출을 통해 현금을 마련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상태다.
SK㈜의 주가는 최 회장과 노 관장의 2심 판결 소식이 전해진 후 상승해 전날보다 9.26% 오른 15만8100원에 장을 마감했다. 이는 시장에서 이번 판결로 경영권 분쟁의 가능성을 감지했다는 신호로 읽힌다. 올해 1분기 기준 최 회장이 보유한 SK㈜ 지분은 17.73%로, 약 2조원 상당의 가치를 갖고 있다.
재계에서는 최 회장이 경영권을 최대한 방어하기 위해 주식담보대출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SK의 지배구조가 그렇게 탄탄하지 못하다”며 “(항소심 판결이 대법원에서도 확정된다면) 최 회장이 보유한 SK(주) 지분이 많지 않은 만큼 위자료 등을 마련하기 위해 지분을 팔면 경영권이 위태해질 수 있기 때문에 담보대출을 고려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정부 도움으로 기업이 컸다는 문구가 SK에겐 대외적으로 큰 타격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재산분할 금액이 확정될 경우, 상속세와 달리 지급이 지연되면 이자가 발생하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지급을 해야한다”며 “1조원 이상의 현금을 갖고 있는 경우는 사실상 없기 때문에 일부는 현금, 일부는 주식, 부동산 등을 팔아 마련해야 하는데, 그래도 돈이 부족할 경우에는 결국 지분을 떼 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에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지분 일부를 준다고 해도 지배구조 자체가 흔들리지는 않겠지만, 과거 헤지펀드 소버린이 SK를 공격했던 사례처럼 헤지펀드들이 SK의 경영권을 위협할 때 이전보다 낮아진 최 회장의 지분이 경영권 방어를 힘들게 할 수도 있다”고 짚었다.
앞서 2003년 외국계 운용사인 소버린은 SK㈜ 지분을 14.99%까지 끌어올리는 등 SK의 최대주주로 부상, 최태원 SK 회장 퇴진 등을 요구했다. 이듬해인 2004년 3월 SK㈜ 정기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 끝에 최 회장이 승리하며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고, 결국 2005년 7월 소버린이 SK㈜ 지분을 전량 매각하며 경영권 분쟁 사태가 마무리된 바 있다.
이번 판결은 최근 대대적인 리밸런싱 추진으로 뒤숭숭한 그룹 내 분위기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SK는 올해 들어 고강도 쇄신에 고삐를 죄고 있다. 최 회장이 경고한 ‘서든데스(돌연사)’ 돌파를 위해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선두에 섰고 최 의장의 진두지휘 하에 그룹 전반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점검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주요 계열사 CEO가 참여하는 전략글로벌위원회 회의를 월 1회 평일에서 격주 토요일 개최로 바꾸며 주요 현안에 대한 점검 태세를 강화했고 주요 계열사별 태스크포스(TF)를 통해 구체적인 사업 조정 방향을 논의 중이다. 수펙스추구협의회 임원은 한 달에 두 차례 금요일에 쉴 수 있는 유연근무제를 반납했고 주요 계열사 임원도 사실상 비상근무 체제에 돌입한 상황이다.
SK는 다음달 25일 전후로 확대경영회의를 열고 현재 진행 중인 리밸런싱 작업을 점검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그룹의 사업 조정 방향성이 어느 정도 가시화될 것으로 업계는 관측하고 있다. 확대경영회의는 이천포럼, CEO세미나와 더불어 SK그룹 최고경영진이 모여 경영 전략을 논의하는 핵심 연례행사다. 특히 그룹 쇄신을 위해 보다 구체적인 경영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는 경영진의 의지를 반영해 회의 명칭을 경영전략회의로 바꾸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표는 “이번 판결이 (SK그룹의) 사업적으로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지주회사가 흔들리면 투자나 인수합병를 섣불리 진행할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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