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 정정훈 세제실장(오른쪽)이 2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년 세수 재추계 결과 및 대응 방향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2024년 국세 수입에 대한 재추계 결과, 올해 국세 수입은 전년 대비 6조4000억원 감소한 337조7000억원으로 예산 대비 29조6000억원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합] |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국세 수입의 40%를 차지하는 법인세가 덜 걷히면서 올해 정부 예산 대비 약 30조원의 세금이 덜 걷힐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역대 최대 규모인 56조4000억원의 결손이 발생한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대규모 ‘세수펑크’다.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선 예산이 필요하지만 재원마련에 대한 뾰족한 방법이 없는 재정당국은 인위적 불용까지 그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상황이 이처럼 심각한데 여당인 국민의힘은 지난달 법인세 최고세율을 또 한번 인하해야 한다는 법안을 발의해둔 상태다.
▶각 부처 사업 ‘예산’ 부족으로 집행 중단?=26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국세수입은 337조7000억원으로 세입예산(367조3000억)보다 29조6000억원(8.1%) 부족할 것으로 예상됐다. 역대급 세수결손이 발생한 작년 국세수입(344조1000억원)보다도 6조4000억원 줄어든 수치다. 2년 연속으로 세수재추계를 공식 발표한 것도 이례적이다. 그만큼 2년째 세수결손 상황이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세수결손의 주범은 법인세다. 기재부는 법인세 결손이 14조5000억원으로, 전체의 절반을 차지할 것으로 본다. 기재부는 “지난해 글로벌 교역 위축, 반도체 업황 침체에 따라 법인세 감소 폭이 당초 예상보다 컸다”고 설명했다. 기업이익과 세수의 시차 탓에 작년 실적 부진이 올해 국세 수입에 반영되고 있다는 의미다.
올해 예산보다 약 30조원의 세수가 부족해지면서 재원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재정당국은 기금의 여윳돈을 동원하고 연내 집행이 어려운 사업에 돈을 쓰지 않는 방식(불용)으로 부족분을 메운다는 방침이다. 불용으로 부족분을 메운다는 것은 당초 정부가 추진하겠다고 계획했던 사업은 접어 그에 소요되는 예산을 줄인다는 의미다. 정정훈 기재부 세제실장은 전날 ‘인위적 불용’ 가능성에 대해 “인위적 불용에 대해선 지금 말하긴 이르다”면서 “재정대응 방식에 따라 여러가지 방안이 동원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인위적 불용이 현실화된다면 정부가 국민에 발표했던 정책이 발표에만 그칠 수 있다. 이 경우 가뜩이나 어려운 내수불황이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법인세 최고세율 또 인하? 국힘, 개정안 발의=더 큰 문제는 심각한 세수결손 상황에서 여당인 국민의힘이 지난 8월 8일 법인세 최고세율을 추가 인하하는 법안을 발의했다는 점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미 연간 영업이익 3000억원 초과 대기업에 적용되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4%로 한 차례 낮췄고, 중소·중견기업 등에 적용되는 세율도 22%→21%, 20%→19%, 10%→9%로 1% 포인트 낮춘 바 있다. 지난달 김미애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개정안은 3000억원 초과 구간에 대해 24%의 최고세율을 적용한 현행 최고세율을 22%로 내린다는 게 핵심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법인세 최고세율이 21.5%인 만큼 세율을 더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의 조세 부담을 측정하기 위한 지표로서 법인세 최고세율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원장을 지낸 김유찬 홍익대 교수는 “우리나라 전체 법인 숫자가 90만개인데, 법인세 최고세율은 과세표준이 3000억원 이상인 103개 대기업에만 적용된다”면서 “다른 나라의 경우 (과표 구간이 나뉘어 있지 않아) 최고세율이 모든 기업에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결국 최고세율만으로는 국가 간 법인들의 조세 부담을 동등하게 비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각종 공제나 감면 조처를 받은 뒤 기업이 실제 납부하는 세율을 따진 실효세율이 좀 더 타당한 비교의 잣대로 분석된다. 국세청에 따르면 시설투자, 인수·합병(M&A) 활성화 등을 이유로 중소기업을 포함한 법인에 주어지는 각종 공제·감면 제도는 30여개에 달한다. 다만 이런 공제·감면 제도는 나라마다 경제 여건이나 조세 정책에 따라 천차만별이고, 그 세부 내용을 일일이 파악하기도 힘들다. 이 탓에 법인세 실효세율에 대한 공식 데이터는 없고, 국가 간 비교도 어려운 실정이다.
다만 연합뉴스가 2019년 데이터로 각 국의 실효세율을 비교한 결과 한국 외에 미국과 영국, 프랑스, 호주, 일본 등 총 6개국 중에서 한국 법인들의 실효세율은 17.5%로, 호주(29.3%), 프랑스(25.6%), 영국(19.8%)에 이어 네 번째였다. 우리보다 실효세율이 낮은 나라는 일본(17.3%)과 미국(14.8%)뿐이었다. 특히 최고세율과 실효세율 간 차이를 보면 영국, 호주, 대만은 그 차이가 미미한 반면 우리나라, 미국, 일본은 격차가 크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상위 10대 대기업' 실효세율, 중소기업보다 낮다=게다가 실효세율 역시 대기업이 중견기업보다 훨씬 낮았다. 실제 지난해 신고된 소득 상위 10대 대기업의 법인세 공제·감면율은 36.4%로 13.1%인 중견기업과 비교해 약 3배 더 높았다. 이런 혜택으로 인해 상위 10대 대기업의 실효세율(15.8%)은 중견기업(18.3%)보다 낮았다. 전체 법인 130만960곳에서 신고된 공제·감면 세액은 총 15조9773억원으로, 10대 대기업이 차지한 공제·감면 세액(4조1007억원)은 전체의 25.7%에 달했다.
한편, 법인세는 납부액 대부분을 상위 1%의 대기업이 주로 부담하는 세목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국세청 납부액 기준 상위 1% 법인의 전체 법인세수 부담률은 2022년 82.2%(91조9817억원), 2023년 79.8%(74조7669억원), 올해의 경우에는 상반기까지 78.8%(33조5861억원)을 부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이들 상위 1% 법인이 낸 올 상반기 부담액은 작년 상반기(45조7957억원) 대비 12조2096억원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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